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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과 담 쌓은 초보가 눈 쌓인 한라산을 올라갔다.

내돈내산 여행기
스틱과 아이젠 필수, 대여업체를 이용
주차가 쉽지 않다. 대중교통을 추천
왕복 5시간이 넘게 걸렸지만 후회없는 선택!

2022년 1월 1일, 한라산에 다녀왔다. 일출을 볼 만큼 부지런하지는 않아서, 8시부터 일정을 시작. 아침부터 날씨가 좋아서 발걸음이 가벼웠다. 한라산 등반은 원래 생각에 없었지만, 요 며칠 인스타에서 눈 쌓인 한라산 풍경들을 보면서 알아보게 되었다. 초보자도 가능하다는 어리목 코스와 영실 코스를 살펴보다가, 풍경이 더 아름다워보이는 영실코스를 택했다.


미리 강조하자면, 초보도 '가능'은 하지만, 결코 쉽지는 않았다.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 되어보이는 아이들도 꽤 눈에 띄었다. 산행은 주차장에서부터 왕복 5시간이 조금 더 소요. 2~3일은 종아리며 발목에 약간의 통증이 느껴졌다. 눈 쌓인 시기에는 초보자일수록 아이젠과 스틱이 필수일 듯. 공항 근처에서 대여가 가능. 다만 눈 쌓인 한라산의 아름다움은 이 정도 수고와 비용은 아무것도 아닌 정도로 경탄스러웠다.

장비 대여가 가능한 오쉐어

8시에 렌트카를 인수받고, 공항 근처의 장비대여 업체 오쉐어에서 등산 장비를 대여. 겨울 산행에 필요한 등산화와 아이젠, 스틱, 스페츠 세트는 1인당 2.2만원. 새해 일출을 보기 위한 등산객이 많았는지, 재고가 많지 않았다고. 날씨가 언제 어떻게 변할 지 몰라 예약을 안했다가 낭패를 볼 뻔 했다.

주차장은 만차,
영실 입구 삼거리에 버스가 있다.

문 닫은 김밥집 몇 군데를 거쳐 겨우 김밥 두 줄을 사서 한라산으로 향했다. 주차장에 다다르니 10시 경이었는데, 만차로 입장이 불가능했다. 길가에 늘어선 차들의 꼬리를 찾아 영실 입구 삼거리까지 내려가서 겨우 주차를 할 수 있었다. 어찌보면 이게 신의 한 수 였는데, 이 삼거리 초입에는 주차장까지 운행하는 240번 버스 정류장이 있었다. 주차를 마치고 올라가려는데 우연히 버스가 정차하는 것이 보여 냅다 뛰었다. 편수가 많지 않을텐데,, 운이 좋았다. 버스 없이 올라갔다면 주차장까지만도 족히 3~40분은 소요됐을 거리.

주차장의 탐방 안내소에서는 11시부터, 거기서 2km 거리의 영실 탐방로 입구에서는 12시부터 출입이 제한되기 때문에, 시간을 잘 생각해야 한다. 다음에 온다면 처음부터 버스를 탈 듯.

새파란 하늘과 새하얀 눈,
깎아지는 절벽과 둥글둥글한 오름.
그리고 그 뒤로 펼쳐진 평화로운 바다.

며칠 전 내렸던 눈 때문에 초입부터 사방이 눈에 덮인 설경이 펼쳐졌다. 새하안 눈 위로는 수직의 절벽이 웅장하게 서 있고, 그 너머는 너무 파랗다 못해 보랏빛이 도는 하늘이었다. 뒤를 돌아보면 둥글둥글 평화로운 오름들 사이에 자리잡은 제주 남쪽의 마을들에 바다가 맞닿아 있었다.


그 수직의 절벽을 오르기 위한 가파른 경사를 한참 동안 오르자, 별안간 눈 앞에 광활한 눈의 들판이 펼쳐졌다. 고지대에서 자라는 키 작은 나무들이 눈을 뒤집어 쓰고 있는 모습은 눈으로 된 산짐승들이 거대한 무리를 이루고 있는 것 같았다. 뭐라고 표현해도 부족한 풍경. 모든 순간, 모든 시선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어느 하나 놀랍지 않은 것도, 새롭지 않은 것도 없었다.


산행을 이어갈 체력도 없었거니와, 시간 제한으로 인해 윗세오름에서 발길을 돌렸다. 윗세오름 표지석 앞에는 사진을 찍기 위한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풍경과 날씨가 어우러져 멋진 사진이 남았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날씨와 해의 위치가 바뀌어서 그런지, 하산길에 보이는 풍경은 또 다시 새로웠다. 다만 햇볕과 발길에 녹은 눈길이 미끄러워 올라갈 때 보다 더 힘들고 조심스러운 걸음이 필요했다. 다 왔다고 생각했을 때 부터 이어지는 등산로 입구~주차장 까지의 구간이 가장 완만하면서도 가장 힘들게 느껴졌다.

올해 한라산은 눈오리 도래지

올해 한라산은 눈오리들이 접수한 상태였다. 쉬어가기 좋은 포인트마다 눈오리 한 두 마리 없는 곳이 없었고, 마치 철새 도래지처럼 눈오리가 집단으로 발견되는 곳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누군가 밤을 틈타 남겨놓고 가는 그래피티 같았다. 오리 말고 펭귄과 곰돌이도 많이 보였다.

등산 문외한인 동행은 벌써부터 성판악 코스를 찾아보고 있다.

사람들이 왜 등산을 하는지, 목숨과 비싼 돈을 내어놓고 히말라야 같은 고산에 오르는지 어렴풋이나마 느껴볼 수 있었던 하루. 오늘 본 풍경과 뿌듯한 기분은 쉽게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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